Media report

기성세대보다 더 권위적이라는데‘젊은 꼰대’ 그들은 누구인가

2023-01-20

# 팀 내 막내 딱지를 뗀 24살 광고 회사 직원 A는 신입 사원들이 출근하는 첫날부터 심기가 불편하다. 그는 “9시인데 신입 사원 분들이 아직도 안 왔다”며 신입 사원이 업무 태도가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A의 말을 들은 선임은 “벌써 후배들 잡는 거냐. ‘젊꼰’ 이런 거냐”며 웃는다. 지적에 주춤한 A는 잠시 몸을 사린다.

# A에게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자기 할 말을 하는 1년 차 후배 B는 가장 큰 눈엣가시다. B의 별명은 ‘맑은 눈의 광인’이다. B는 A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특히 B가 업무 시간마다 끼는 무선 이어폰은 A의 분노를 유발하게 한다. A는 B를 볼 때마다 “업무 중에는 무선 이어폰을 빼라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라고 한다. 돌아오는 B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그는 “노래 안 듣고 있습니다. 이걸 끼고 일해야 안정감이 듭니다”라고 반복해서 답한다. 기 싸움에서 진 A는 “그럼 한쪽만 끼라” 말하고 한숨을 쉰다.

최근 화제를 모으는 SNL ‘MZ 오피스’의 한 장면이다. MZ 오피스는 직장에 입사한 젊은 직원들 행태를 풍자한 코너다. 다양한 주인공 중 배우 주현영이 연기한 A는 ‘젊은 꼰대’의 상징으로 불리며 인기를 끈다. 젊은 꼰대는 젊은 나이임에도 조언을 빙자한 명령을 늘어놓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나이는 어린데, 기성세대보다 더 권위적인 선배들을 비하할 때 쓰인다.

신입 사원들이 묘사하는 젊은 꼰대의 말투나 행동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와 비슷하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라며 자신의 경험만을 내세워 불합리한 지시를 내린다. 편하게 의견을 제시하라 해놓고는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강요하고 명령한다. 갑자기 나이를 묻고 무시하듯 말하는 점도 판박이다. 1년 먼저 태어난 것 갖고 온갖 유세를 떤다. 우리가 말하는 ‘꼰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자신이 젊은 꼰대인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늙은 꼰대와 자신을 구분 지으려 한다. 자신이 후배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인기 방송 프로그램에서 직접 풍자를 할 정도로 ‘젊은 꼰대’는 직장에서 흔한 유형이 됐다. 다만, 젊은 꼰대를 바라보는 직장 내 시선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윗 세대보다 더 지독한 상사라는 비판과 조직 기강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메는 존재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공존한다. 누구보다도 부조리를 싫어했던 젊은 세대가 왜 ‘꼰대’로 전락한 것일까. 또 미디어와 언론에서 묘사하는 대로 ‘꽉 막히고 답답한 존재’일까.

MZ 오피스에서 주현영 배우가 연기하는 ‘젊은 꼰대’는 오피스 내에서 있을 법한 캐릭터로 화제를 모은다(위). ‘맑은 눈의 광인’으로 불리는 신입 사원 김아영은 젊은 꼰대인 주현영과 대립각을 세운다(아래).(쿠팡플레이 제공, 쿠팡플레이 유튜브 화면 캡처)

MZ 오피스에서 주현영 배우가 연기하는 ‘젊은 꼰대’는 오피스 내에서 있을 법한 캐릭터로 화제를 모은다(위). ‘맑은 눈의 광인’으로 불리는 신입 사원 김아영은 젊은 꼰대인 주현영과 대립각을 세운다(아래).(쿠팡플레이 제공, 쿠팡플레이 유튜브 화면 캡처)



직장인 97% 젊은 꼰대 알아

직장인 60% “나는 젊은 꼰대다”

젊은 꼰대는 과연 직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일까. 직장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매경이코노미는 HR 업체 인크루트에 의뢰, ‘젊은 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설문을 돌렸다. 직장인 612명이 응답했다.

젊은 꼰대의 뜻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응답자 97.2%가 젊은 꼰대의 의미를 안다고 답했다. 모른다고 답한 비율은 2.8%에 그쳤다. 신입 사원부터 10년 차 넘는 중견급 직원까지 젊은 꼰대의 뜻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젊은 꼰대 뜻을 모르는 직장인도 과반수가 최근 들어 1~2년 차 선배와 신입 사원 사이의 갈등이 심해진다고 답했다.

회사 내에 젊은 꼰대는 얼마나 있을까. 뜻을 안다고 답한 응답자 595명 중 71.4%가 회사에 ‘젊은 꼰대가 있다’고 답했다. 회사 분위기에 따라 비교적 수직적이고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젊은 꼰대’가 많았다. 반면 스타트업을 비롯, 수평적 조직문화가 강한 곳은 젊은 꼰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답변이 강세였다.

‘젊은 꼰대’는 마냥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595명 중 266명이 ‘신입을 가르치기 위해 총대 메는 역할이다’라고 답했다. 조직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긍정적인 존재라고 평가했다. 이어 특별한 감정이 없다고 응답한 중립 응답자가 29.6%다.

젊은 꼰대를 관대하게 바라보는 이들은 조직 문화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물류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지호 씨(32)는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악폐습은 없어지는 게 당연히 맞다. 그런데 요즘 심각하게 부조리한 문화를 가진 회사는 거의 없지 않나. 일부 신입 사원이 자신의 개인주의·이기주의 성향을 정당화하려고 ‘젊은 꼰대’라는 용어로 선배의 정당한 충고조차 거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 남준오 씨(33)는 “어느 조직이든 할 일 알아서 잘하면 야단맞을 일도 없다. 주어진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한가하게 딴청 피우는 것조차 혼내지 못하면 선배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상사에게 대들고, 후배에게는 권위를 요구하는 이중적인 존재다’라고 답한 부정 비율은 25.7%였다. 젊은 꼰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지나친 간섭’이 문제라고 내다본다. 음반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 김석웅 씨(30)는 “젊은 상사들이 더 하면 더 했다. 기저질환 때문에 건강관리 목적으로 샐러드를 먹는 직원에게 대놓고 구박을 주는 것을 봤다. 정당한 지적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몸이 아픈 것까지 비아냥대는 게 정당한 지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본인이 ‘꼰대’라고 느끼는 직장인 수도 상당했다. 사내 위치가 중간급 이상이라고 답한 320명 중 본인이 스스로 젊은 꼰대라고 생각한다는 비율이 60.6%에 달했다. 본인이 젊은 꼰대가 아니라고 답한 비율은 39.4%였다. F&B 스타트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주현 씨(31)는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더라도, 남들 다 일하는데 노는 직원들을 보면 마음속에서 화가 차오른다. 그때마다 ‘내가 꼰대가 됐나’라며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젊은 꼰대

젊은 꼰대



MZ vs MZ 갈등 왜?

과도한 업무와 문화 차이

젊은 꼰대 현상은 일반적인 세대 갈등과는 양상이 다르다. 자라온 환경부터 조직 내 위치까지 다른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꼰대’로 불리는 선배와 신입 사원의 격차는 1~2년에 불과하다. 사실상 같은 세대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왜 더 격렬하게 싸우는 것일까.

현역에서 일하는 직장인과 HR업계 관계자들은 신입 직원들의 부적응, 과도한 업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인크루트 설문조사 결과 ‘젊은 직원 사이의 갈등 원인’ 항목에서 56%의 응답자가 신입 직원의 부적응과 태도가 문제라고 답했다. 빠르게 일을 배우고 적응해야 할 신입 직원들이 회사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식품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상용 씨(35)는 “신입 사원들을 보면 ‘워라밸’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워라밸은 자신의 삶을 챙기라는 뜻이지 회사 업무를 등한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업무에 매몰되는 삶이 좋다는 게 아니다. 다만, 개인의 삶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분명 고칠 필요가 있다. 채용됐으면 적어도 1인분의 일은 해나가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과도한 업무(33%)도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업무가 많다 보니 일이 몰리는 기존 직원 불만이 쌓이게 되고, 아직 업무 처리가 미숙한 신입 사원과의 갈등으로 번진다는 설명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진 사회 분위기(33%)가 문제라는 답변 역시 상당수다.

일부 직장인은 문화 속도가 빠르게 변하는 게 갈등이 커진 이유라고 생각한다. 비교적 사회 변화 속도가 느리던 과거와 달리 문화가 재빠르게 변하면서 세대 간 격차가 더 커진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10년 단위로 ‘같은 세대’라는 인식이 강했다. 1960년대생, 1970년대생, 1980년대생 등은 모두 같은 세대로 묶였다. 그러나 1990년대생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같은 세대라도 비슷한 문화를 즐기지 못했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과 1990년대 후반 세대는 공유하는 사회·문화가 다르다. 2000년대생은 같은 세대 간 문화, 의식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콘텐츠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경재 씨(32)는 “나이가 4살 어린 직원과 이야기하다 보면 같은 1990년대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완전 다르다. 오히려 4살 많은 1980년대생과 말이 더 잘 통한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는데도, 문화적 차이에서 생기는 갈등이 생각보다 많다”고 귀띔했다.

인크루트 관계자는 “결국 젊은 꼰대 현상도 문화 차이에서 발생한다. 젊은 꼰대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는 기업들을 보면, 문화 갈등이 발생하지 않게 직원끼리의 소통을 꾸준히 강조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젊은 직원들의 갈등을 해결하려면 결국 ‘조직문화 개선’과 유연 근무를 위한 사무실 환경 개선이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사진은 삼성전자 거점 오피스 딜라이트 서초. (삼성전자 제공)

젊은 직원들의 갈등을 해결하려면 결국 ‘조직문화 개선’과 유연 근무를 위한 사무실 환경 개선이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사진은 삼성전자 거점 오피스 딜라이트 서초. (삼성전자 제공)



젊은 꼰대 vs 신입 사원

갈등 해결은 ‘조직 개혁’

‘젊은 꼰대’로 지목당한 상사와 신입 직원 사이의 갈등이 나타나면 대다수 회사에서는 “서로 존중하라”고 타이르는 식으로 끝낸다. 상호 존중하자는 구호로 갈등을 얼버무리는 경우도 상당수다. 조직 구조 문제에서 발생하는 게 아닌, 개인 간의 싸움이라고 내다보는 것이다.

이 같은 단순 구호로는 젊은 직원 사이의 갈등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와 현직 직장인의 중론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사 내 인사 제도, 조직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젊은 꼰대로 불리는 선배들과 신입 사원 사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복수응답 허용)에 응답자 51.5%는 ‘관리자 직급의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부서장급 직원이 신입 사원의 적응을 돕고 업무량을 조절하는 등의 조치만 제때 취해도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 강세다.

다음으로 신입 직원의 적응을 돕는 OJT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답변(38.4%)이 뒤를 이었다. 갈등의 대부분이 신입 직원 부적응에서 발생하는 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회사 내 교육을 더 강화하라는 주장이다. 젊은 직원들을 위한 사내 리더십 교육(34.8%)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잖았다. 젊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다 보니 과거 악습을 답습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조직문화가 중요하다’는 개선책을 내놓는다. 집단을 중시하고 업무 효율만 강조하는 조직문화가 깔려 있으면 그 어떤 이가 오더라도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직급을 파괴하는 수평적 문화를 도입하고 애자일 조직을 활용, 유연성을 높이면 젊은 꼰대 문화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는 조언이다.

이성봉 커리어케어 상무는 “젊은 꼰대도 결국에는 조직문화에 순응하고 적응한 직원이다. 직원 본성이 뒤틀렸다 보기는 힘들다. 조직문화에 적응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는 곧 조직문화만 개선해도 ‘꼰대’ 문제 상당수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래 조직문화가 수평적인 곳에서는 ‘젊은 꼰대’라 불리는 존재를 보기 힘들다. 개개인의 능력과 개성을 존중하는 수평적인 조직으로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직급을 파괴하고 호칭을 상호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게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3·설합본호 (2023.01.18~2023.01.31일자) 기사입니다]


작   성 | 매경이코노미 반진욱 기자 

출   처 | 매경이코노미 2023-1-13


[기사원문] [매경이코노미] 기성세대보다 더 권위적이라는데‘젊은 꼰대’ 그들은 누구인가